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프 란다우 (문단 편집) === 말년 === 1962년 1월 7일, 란다우의 차가 마주오는 트럭에 충돌한다. 그는 다발성 골절로 심하게 부상을 입고 석 달간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Dorozynski, Alexander (1965). The Man They Wouldn't Let Die(죽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사나이)를 참고하라. 1962년 란다우의 자동차 사고 이후, 물리학자 사회에서 그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한 과정을 다룸. 시도 자체는 성공해, 1968년까지 란다우는 살아있었다.] 많은 의료진과 주위 동료의 노력으로 57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목숨은 구했지만 학자로서의 생명은 끝나버렸다고 한다. 그가 사망하기까지의 6년간 그는 병석에 있었고, 처음에는 인지능력이 갓난아이처럼 퇴화했으나 끊임없는 재활로 주위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하기는 했으나, 연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성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치매상태로 있었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재활을 계속하여 병석에서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자신의 노벨상 수상을 알게 된 후 란다우 목록에서 자신을 2.5에서 1.5까지 높일 정도로 인지능력이 돌아오기는 했다.] 그는 명목상으로만 물리 문제 연구소의 이론물리학부 책임자였을 뿐, 아무런 창의적인 학문 활동을 하지 못했다. 란다우는 이 부상 때문에 1962년 노벨물리학상[* 노벨상은 사고가 있던 그해 11월 응집에 관한 이론, 특히 액체 헬륨에 관한 개척자로써 노벨상을 받게 되었는데, 노벨상은 죽은 사람에게 줄 수 없으므로 서둘러서 주었다는 소문이 있다.]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다. 60세가 되는 1968년 4월 1일에 장폐색증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출혈이 심해서 사망했다. 사후 [[노보데비치 수도원|노보데비치(Novodevichy) 묘지]]에 매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